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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양성진 / 19일의 금요일
    novel 2021. 5. 28. 18:44

    * 예전에 다른 사이트에 올렸던 글 재업로드

    * 효성진이 모종의 이유로 뱀파이어가 됩니다

     

     


     

     여느 때처럼 설양과 함께 야렵을 나간 효성진은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 상화를 검집에 집어넣으며 설양을 불렀다. 더 늦기 전에 돌아가자, 그리 말하며 뒤로 도는데 별안간 설양이 다급하게 외쳤다. 효성진! 옆에! 그에 효성진은 근처에 주시가 있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검에 대해 의아해하며 풀이 밟히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상화를 찔렀다. 다행히 주시의 몸에 정확히 박혀 든 것인지 핏방울이 날을 따라 흘러내려 효성진의 손에 닿았다. 아침에 찢어진 장바구니를 고치다가 실수로 베인 손가락의 상처에까지 닿자 그는 곧장 검을 빼냈다. 꺼림칙한 느낌에 손을 만지작거리자 근처로 다가온 설양이 물었다.

     

       “왜 그래? 어디 다치기라도 했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나저나 주시가 있는데 왜 상화가 반응을 안 했지….”

     

     주시가 아닌 건가? 효성진의 물음에 설양은 그의 어깨를 감싸 이끌며 자리를 벗어났다. 아니, 주시 맞아. 목에 검은색 자국도 있고 눈에 초점도 없어. 혹여나 자신이 의성 사람들로 주시를 만들었다는 게 들키기라도 할까 봐 그는 매사 능글맞은 것과는 달리 조금 당황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그래? 자네가 그런다면 그런 거겠지. 효성진 또한 그의 말을 의심하지 않은 채 의장으로 돌아갔다. 주시의 피가 닿은 상처 부위에 어째서인지 열이 몰리는 걸 느끼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관에서 나온 아천은 기지개를 피며 햇빛이 들어오는 의장을 둘러보았다. 보통 이 시간이면 오라버니가 나와 계실 텐데, 그러나 효성진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고 느낄 찰나, 설양이 손에 무언가를 쥔 채 황급히 의장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아천은 반사적으로 지팡이를 집어 끝으로 바닥을 툭툭, 건드리며 조금씩 앞으로 걸어나가는 척했다.

     

       “누가 뛰는 거예요? 오라버니?”

       “꼬마 장님. 밥은 해놨으니까 들어가서 먹어. 효성진이랑 난 바빠.”

       “뭐? 난 장님인데 어디 있는지 알고 먹으러 가? 오라버니는 왜? 무슨 일인데.”

     

     방으로 향하던 걸음을 돌린 설양은 귀찮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아천의 팔을 잡아끌었다. 됐지? 여기 앉아서 먹어. 그러고는 다시 뛰쳐나간 설양의 뒷모습을 아천은 몰래 시선으로 쫓았다. 고개를 내밀어 건너편에 있는 설양과 효성진을 훔쳐보는데 자세히는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둘이서 무슨 대화를 나누는 건 확실한 듯했다.

     

       “효성진, 붕대 가져왔으니까 손 이리 내. 감아줄게.”

       “미안하네, 나 때문에 아침부터….”

       “됐어. 사과할 시간에 어쩌다 이 꼴이 난 건지나 생각해 봐.”

     

     잔뜩 화상을 입어 까진 손등 위에 하얀 붕대가 둘렸다. 가시지 않는 따가움에 효성진은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손가락을 오므렸다. 자기 전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손가락에 난 상처부터 시작해 전신으로 열이 퍼지기 시작하더니 나중에 가선 치통까지 동반했다. 속에서 불이 난듯한 통증에 몇 번이고 볏짚 위에서 몸을 뒤척거리기도 했다. 겨우 진정이 되었을 때 재빨리 잠들었던 성진은 늘상 일어나던 시간에 눈을 떠 평소보다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햇빛 아래로 나갔을 뿐이다. 햇빛의 따스함을 먼저 느끼기 위해 손을 뻗었는데 그대로 불에 데인 것마냥 손등의 피부가 타들어 갔다. 아!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뒤로 물러서자 아침을 먹으라며 그를 데리러 온 설양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손 왜 그래? 언제 다친 거야? 효성진은 방금, 햇빛 닿자마자 이렇게 됐네…. 라고 대답하면서 본인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효성진 너 햇빛 닿으면 안 되고 그런 병 있었어? 고개를 좌우로 젓자 설양은 일단 기다리라며 곧장 밖으로 뛰쳐나가 붕대를 구해 온 것이다. 급하게 나오느라 돈을 챙기지 못했지만, 그건 그에게 있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손등 말고 또 다친 덴 없어?”

       “응, 이제 괜찮네. 신경 써줘서 고맙네.”

       “그런 인사는 됐다니까. … 아직도 왜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어? 원래대로 돌아오지도 않고.”

     

     손을 뻗어 효성진의 윗입술 아래로 엄지를 끼워 넣은 설양은 여전히 뾰족하게 자리한 송곳니를 만지며 미간을 좁혔다. 무슨 짐승 새끼도 아니고, 이빨은 대체 왜 변한 거지? 날카로운 끝부분을 눌러보니 당장이라도 살이 뚫려 피를 볼 듯했다. 이렇게 생긴 인간은 물론 괴뢰도 본 적이 없었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효성진은 이내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어젯밤 자네와 야렵에 나갔다가 마주쳤던 주시의 피가 여기, 손가락에 난 상처에 닿았었네.”

     

     붕대 위로 드러난 작은 생채기를 보여주자 그 부분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설양은 눈썹을 들썩였다. 괴뢰의 피가 상처에 닿는다고 해서 그 괴뢰의 특성이 인간에게 옮겨진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위생상으로는 좋을 리 없겠지만, 어디까지나 위생상의 문제만 일어날 뿐이었다. 그 문제가 이런 현상을 일으키진 않을 거고…. 의문이 풀리긴 커녕 더욱 깊어지기만 할 때, 아천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라버니는 밥 안 먹어요? 왜 아무도 안 와요?”

       “아천에게는,”

       “걱정하지 마. 비밀로 할 거니까.”

     

     밥상 앞으로 가 효성진의 몫만큼만 챙긴 설양이 다시 나가려고 하자 아천은 지팡이로 그의 다리를 건드리며 물었다. 뭐 하는 데? 왜 여기서 안 먹어? 설양은 대놓고 성가신 표정을 지으며 효성진이 지금 몸이 안 좋아 일어날 수 없으니 가져다주는 것이라 했다. 오라버니가 아파? 아천이 일어나 그에게 가려고 하자 설양은 제 몸으로 그녀를 막았다. 안 돼, 옮으니까 넌 근처에 오지 말라고 했어. 아, 좀! 실랑이 끝에 아천은 씩씩거리며 의장 밖으로 나갔다. 산책이랍시고 온갖 데를 싸돌아다니다가 오겠지, 눈도 안 보인다면서 겁도 없네. 작게 혀를 찬 뒤 효성진에게 달려가 앞에 가져온 반찬을 늘여놓았다.

     

     자, 이거 들고 먹어. 손에 밥그릇과 젓가락을 쥐여주는데 대뜸 효성진이 헛구역질을 하며 밥그릇을 떨어뜨렸다. 바닥에 쏟아진 밥알보다 입을 틀어막고 아침밥에서 아예 몸을 돌려버린 효성진에게로 시선이 움직였다. 뭐야, 왜 그래? 속이 안 좋아?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묻자 그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다시 몸을 원래대로 돌리진 못했다. 그러지 말고 빨리 먹어. 굶어 죽으려고? 감자채를 볶은 것을 얼굴 앞에 들이대니 효성진은 손을 내저으며 한 번 더 헛구역질을 내뱉었다.

     

       “대체 뭐야? 사내의 몸으로 애를 뱄을 리는 없고.”

       “당연한 말을…. 으욱,”

     

     음식은 종류에 상관없이 전부 근처에만 있어도 토기를 유발하는 듯한 반응에 설양은 결국 가져왔던 음식들을 다시 들고 나가야 했다. 효성진의 상태가 이상해지는 건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어디서 다쳐 오는 건 상상해본 적이 있어도 지금처럼 음식은 입에 대지도 못하고, 햇빛은 쐬면 피부가 타고, 송곳니가 유달리 뾰족해지는 효성진은 꿈에도 나온 적이 없었다. 일단 오늘 하루는 밖에 나오지 말고 안에 있어. 꼬마 장님한테 너 아프다고 했으니까 혹시 몰래 와서 말 걸면 대충 아픈 척해. 효성진을 볏짚 위에 눕힌 설양은 시장에 나가 천을 몇 장 가져와 효성진의 방 앞에 달아 햇빛이 최대한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고맙다는 말이 들려왔으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예 천막까지 쳐진 걸 보며 아천은 설양에게 효성진이 어떤 상태인지 말하라며 독촉했고, 그는 결국 짜증을 내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천 또한 짜증이 나는 건 마찬가지였기에 그를 붙잡지 않고 효성진의 방만 하염없이 응시했다. 직접 가서 물어보면 오라버니는 친절하게 알려주겠지만, 옮으니까 오지 말라고 했으니……. 결국 물어보는 걸 포기한 아천은 관에 들어가 누웠다. 오라버니는 튼튼한 사람이니까 금방 다 나을 거야. 한참이 지나 방에서 나온 설양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완전히 잠들었는지 확인한 그는 발을 돌려 효성진에게로 갔다.

     

       “효성진, 자?”

     

     혹여 아천이 들을까 싶어 작게 속삭인 설양이 천 안쪽으로 들어왔다. 볏짚 위에 앉아 있던 효성진은 익숙한 목소리에 상화를 내려놓았다. 옆에 앉아 송곳니를 확인했으나 아침과 똑같았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 봐야 돌아오려나? 중얼거리며 손가락을 빼는데 순간 효성진이 손을 들어 설양의 손목을 붙잡았다.

     

       “왜? 할 말 있어?”

       “… 자네 어디 다쳤나?”

       “다쳤냐고? 아, 아까 감자 깎다가 살짝 베였는데. 그건 왜? 어떻게 알았어?”

       “피 냄새가 너무 짙어. 크게 다친 건가?”

       “아니?”

     

     상처라고 하기에도 조금 애매할 만큼 작은 것이었다. 피가 나긴 했으나 정말 몇 방울 흐르다 금세 멎어버렸기에 설양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효성진은 그가 다쳤음을 알아차렸다. 그것도 피 냄새로. 눈이 안 보이니까 다른 감각이 발달한 거겠지, 생각하며 잡힌 손을 빼내려는데 효성진은 그의 손목을 놔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세게 쥐는 탓에 설양은 의도치 않게 성진의 완력이 얼마나 강한 지를 몸소 체험해야 했다.

     

       “아! 아파, 효성진! 왜 이래?”

       “… 피 냄새가 진동하는데. 정말로 크게 다치지 않았단 말이야?”

       “답답하네, 진짜. 네가 직접 만져 봐.”

     

     손을 잡아끌어 직접 상처 부위를 만지게 해주고 나서야 효성진은 알겠다는 듯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손목을 놔주지 않아 설양이 한 번 더 입술을 떼는데, 갑작스레 상처 위로 부드러운 입술이 닿았다. 당황스러운 상황에 그를 뿌리치지도 못하고 가만히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자, 이젠 혀를 내어 상처 부위를 핥기 시작했다. 말캉거리는 혀가 닿자 점점 벌어진 상처 사이로 작은 핏방울이 흘러나왔다. 극소량의 피가 입안에 떨어지자 효성진은 꼭 넋을 놓아버린 사람처럼 불러도 대답하지 않고 계속해서 손가락을, 더 정확히는 설양의 피를 빨았다.

     

       “효성진!!”

     

     목소리를 낮추는 것도 잊은 채 소리를 지르며 그의 어깨를 밀쳐내자 겨우 떨어졌다. 설양은 황당하다는 듯이 효성진에게 빨린 손가락을 바라보던 눈동자가 이내 멍하니 숨을 고르고 있는 효성진을 향했다. 방금 뭐 한 거야? 이걸 왜 빨아, 아니, 피를 왜 빨아먹어? 설양의 질문에 효성진은 또다시 고개만 저었다. 나도 모르겠네. 그냥, 정신 차리고 보니……. 그는 진심으로 제 몸에 일어난 현상에 대해 모르는 것 같았다. 효성진의 타액에 젖어 축축해진 검지를 보던 설양이 이제야 알겠다는 듯 자세를 고쳐 앉아 효성진을 마주 보았다.

     

       “그러니까, 음식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 먹는데 사람 피는 먹을 수 있다는 거네.”

       “어찌 사람이 다른 이의 피를 먹을 수 있겠는가.”

       “근데 너도 먹었잖아, 내 거.”

     

     할 말이 없어진 효성진은 입술을 꾹 닫았다. 효성진, 그럼 나랑 거래하자. 네가 원할 때마다 내 피 먹을 수 있게 해줄게, 대신. 대신? 설양의 마지막 말을 따라 하는 효성진은 어느덧 그의 제안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대신 나랑 자야 해. 피 먹은 만큼 나랑 자는 거야.”

     

     성진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자네가 남색이 취미인 건 내가 말리지 않겠다만, 나는 그런 쪽에 흥미도 무엇도 없으니 그런 말 다시는 하지 말게. 혼인도 안 한 사이에서 어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는가. 진부한 노인네 같은 말에 설양은 코웃음을 쳤다. 글쎄, 나중에 가서도 네가 그런 말을 할까? 효성진이 무어라 반박하기도 전에 그는 옷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붙인 뒤 상화를 집어들어 단번에 팔뚝 위를 그었다.

     

     순식간에 새겨진 상처의 틈새로 방울방울 맺히던 피가 아래로 흘러갔다. 아까보다 훨씬 더 진한 피 냄새에 효성진은 머리 전체가 울리는 듯했다. 호흡이 거칠어졌고 정신이 몽롱해져 당장이라도 이성을 잃어 그의 팔에 매달리게 될 것만 같았다. 어젯밤처럼 들끓기 시작하는 속이 뜨거워 옷깃을 움켜쥔 채 상체를 숙이자 설양은 웃으며 아예 효성진의 입에 자신의 팔을 가져다 대었다.

     

       “먹어도 돼, 효성진. 그러라고 한 건데 먹어야지. 안 그래?”

     

     괜찮으니까 먹어. 약속만 지키면 돼. 낮게 속삭이는 설양의 말에 점점 더 거친 숨을 내쉬던 효성진은 결국 상처 위로 입술을 가져갔다.

     

     피가 빨리는 느낌이란 낯설기 그지없었다. 허겁지겁 흐르는 피를 핥다가 벌어진 상처에 입을 대고 빠는 효성진을 내려다보는 것 또한 낯설었다. 늘 자기보다 위를 볼 수 있는 자가 아래에 있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희열감을 안겨주었다. 급하게 먹다가 체하겠다, 천천히 해. 다른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자 살짝 그릉거리는 소리를 낸 듯싶었다. 뭐야, 짐승 새끼 같다고 했더니 진짜 짐승이라도 된 거야? 비소가 잔뜩 담긴 도발이었으나 효성진은 들리지도 않는지 송곳니로 상처 옆의 깨끗한 피부를 깨물어 새로이 피를 흘리게 했다. 따끔한 통증에 미간을 좁히면서도 설양은 제 팔을 그대로 두었다. 즐길 수 있을 때 즐겨, 뒷감당 같은 건 생각하지 말고. 그건 내가 알아서 해.

     

     흡혈이 이어질수록 설양의 눈동자가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몸에 일어난 이상한 변화 탓이었다. 체온이 오르더니 점점 아랫배가 유난히 뜨거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 설양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건 몰라도 이 감각만큼은 그에게도 익숙한 종류였다. 씻고 나온 효성진이나, 무방비한 상태의 효성진을 볼 때면 늘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오던 흥분감이었다.

     

     피 빨아먹는 사람도 처음인데, 빨리면서 흥분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건 몰랐네. 그런 약속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설양은 조금 다급한 손길로 효성진의 어깨를 밀었다. 입술에 묻은 피를 핥으며 다물지 못한 입술 사이로 뜨거운 숨을 내뱉는 그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세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설양은 이미 굉장히 달아오른 상태였다. 팔뚝에 입술을 가져가 피를 묻힌 후 효성진을 밀쳐 눕혀 그 위에 올라탔다. 짙은 피 향에 맨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어하는 그에게 입을 맞추자 겉에 묻은 피를 핥기 위해 먼저 혀를 내었다. 입안을 파고들어 자연스레 혀를 얽혔다. 송곳니에 스친 탓에 베인 혀끝에서 새어 나오는 피에 성진은 두 팔로 설양의 등을 끌어안으며 더욱 몸을 붙여 왔다. 흡혈에 집중하느라 본능적으로 취한 듯한 행동이라는 건 알았으나 마치 그 명월청풍이 나서서 사내를 유혹하는 듯한 몸짓이라는 건 변함 없는 사실이었다.

     

     손을 내려 효성진의 옷깃을 풀어헤쳐 안으로 손을 넣어 맨살을 쓸어내렸다. 타고나길 예민한 건지 작은 손길 하나에도 부르르 떨며 막힌 입에서 앓는 소리를 흘리는 게 색정적이었다. 허리띠를 풀어 속곳 안에서 이미 반쯤 서 있는 것을 쥐자 효성진은 허리를 얕게 튕기며 옷자락을 세게 잡았다. 흐응, 읏, 으으응……. 질척하게 붙어 있던 입을 떼자 기다렸다는 듯이 숨소리 가득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침대 위에서도 고결함을 유지할 사람처럼 굴더니 결국은 본능에 솔직한 인간이라는 건가? 손을 뻗어 설양의 팔뚝을 더듬은 효성진은 제 손바닥을 코앞으로 가져가 묻은 피를 핥았다. 그 탓에 흐르던 신음이 틀어막혀 웅웅거리고 있었다.

     

     그새 멎어버린 피에 효성진이 안달하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위로는 굶주림에 허덕이면서 아래로는 설양에 의해 계속해서 자극당하느라 그는 한시도 편하게 누워 있을 수 없었다. 하앗, 윽, 흐으…. ㄴ, 나, 아아! 고개를 젖히며 느끼다가도 살갗을 다 뜯어버릴 듯이 긁어대는 손끝은 확실하게 피를 갈구하는 이의 몸짓이었다. 알았어, 먹게 해줄게. 손을 빨리하여 사정을 하도록 한 설양은 여운으로 힘이 전부 빠져나간 성진의 엉덩이를 받쳐 들어 제 허벅지 위로 앉혔다. 일으켜진 상체는 자연스레 설양에게 기대어졌고, 순식간에 설양의 옆목이 효성진의 코앞에 놓였다. 후각을 마비시킬 것 같던 피 냄새 사이에서 계속해서 코끝을 건드리던 달큰한 향이 여기서 나는 거였구나, 뒤를 파고드는 투박한 손가락을 느끼며 성진은 목에 이빨을 박아넣었다.

     

     아까보다 더 생경하게 느껴지는 살이 뚫린 감각에 설양은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효성진의 뒤를 푸는 일에 집중했다. 상대적으로 다른 신체 부위보다 예민할 수밖에 없는 목인데, 거기에 다른 이도 아닌 효성진이 얼굴을 파묻은 채 거친 숨을 내쉬고 있다는 건 지나칠 정도로 자극적인 소재였다. 천에 막힌 성기가 아플 지경이었다. 어울리지도 않는 배려 따윈 집어던지고 당장 열린 적 없는 뒤에 처박아 잔뜩 피랑 정액을 쏟아내게 하고 싶었다. 이번 한 번만 붙어먹는 게 아니니까, 앞으로도 계속 따먹을 거니까, 다음을 고려할 줄 알아야지, 라는 말로 애써 스스로를 달래며 설양은 효성진의 귓가에 달아오른 숨을 내뱉었다. 하아……. 효성진, 맛있어? 그 물음이 수치스러운 줄도 모르고 그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송곳니는 박혀 있는 채였다.

     

     손가락의 개수가 늘어나자 내벽을 자극하는 면적 또한 넓어져 더 큰 쾌락을 불러일으켰다. 입술을 뗀 효성진이 두 팔로 설양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더욱 그의 목덜미로 얼굴을 파묻었다. 흐응, 응, 아읏, 한평생 그 무엇도 참아본 적 없는 사람처럼 전혀 신음을 숨기지 못하는 효성진을 보는 게 너무나도 즐거워 설양은 꼭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누가 알겠어, 귀한 명월청풍이 이런 남색가에 사람 피나 탐하는 괴물로 자랄 운명이었다는 걸 누가 알았겠어.”

     

     자신을 모욕하는 말에도 효성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성은 놓아버린 지 오래였고, 지금은 그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능에 휘둘리고 있었으니 설양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일일이 수치스러워하고 화를 낼 여유는 남아 있지 않았다.

     

       “효성진. 나 이제 슬슬 넣어도 되지? 너만 급한 건 아니라서.”

     

     손가락도 내어주고, 팔뚝도, 목도 내어주고, 정성껏 뒤까지 풀어주고 나서야 설양은 제 바지춤을 풀어 발기한 성기를 꺼낼 수 있었다. 뭉툭한 귀두 끝이 닿는 감각에 효성진은 상체를 떨며 잇자국에서 흐르는 피를 핥다가 다시 이를 박아 피를 빨았다. 아, 너무 아프게 하지 마. 자꾸 그러면 나도 못 봐줘.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던 주제에 설양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충분히 들어갈 만큼 풀어줬다고 생각했으나 사내를 받아본 적 없는 몸이 쉽게 열릴 리 만무했다. 귀두만 겨우 삽입했는데도 찢어질 것처럼 늘어난 구멍은 막대한 고통을 유발했기에 설양의 목을 깨무는 힘만 더욱 거세졌다. 으응, 읏, 흐읏, 으으응…! 손톱을 세워 옷 위로 등을 할퀴는 게 설양으로 하여금 지금 그가 명월청풍에게 박고 있다는 걸 상기시켜 주었다.

     

     귀두를 넘어 기둥까지 조금 더 삽입하자 효성진은 들썩거리며 그에게서 빠져나가려 하였다. 움직임이 거슬려 두 손으로 허리를 잡은 채 꾹 눌러 앉히자 더욱 깊게 들어오는 성기 탓에 효성진의 신음이 더욱 커졌다.

     

       “하앙, 아! 으읍, 읏, 흐으…. 아, 파….”

       “그래, 나도 피 빨릴 때 아팠어.”

     

     더 이상 봐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는 듯 설양은 뿌리까지 처박으며 내벽 깊은 곳까지 찔러댔다. 피를 마시는 것도 잊고 효성진은 정신없이 위아래로 흔들리며 설양이 주는 쾌감에 물들어갔다. 아직도 코에 남은 피비린내에 꼭 술을 마신 것처럼 취한 기분이 들었다. 금기시된 무언가를 건드린 듯했다. 이토록 좋은 것이니, 지나치게 사람을 기분 좋게 해서 금지된 것을 몰래 훔쳐온 듯했다. 그만큼 차오르는 쾌락이 과했다. 성진은 간만에 머리에 둘러진 안대가 답답하다고 느꼈다. 몸을 감싸고 있는 옷도 거슬렸다. 전부 벗어던진 채 설양의 피를 마시며 그와 얽혀있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 읏, 으흐읏, 아앙! 하으, 흐,”

       “하아, 하… 효성진….”

       “응, 흐으, 으응!”

     

     빨라지는 허릿짓에 성진은 신음을 내뱉다 말고 또 설양의 목에 입술을 묻었다. 아래에서 느껴지는 쾌락에 잠시 잊고 있다가도 금세 다시 떠올랐다. 조금이라도 맛보았던 게 잘못이 아닐까, 싶을 만큼 단맛이 풍겼다. 효성진은 본래 자신의 입맛으로는 단 음식이라면 은근히 기피할 정도였는데, 이상한 변화를 겪고 난 이후로는 미친 듯이 단 걸 먹고 싶어 했다. 사탕 같은 인조적인 단맛이 아닌, 설양의 몸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자연적으로 존재하고, 흐르고 있었던 것.

     

     으흣, 으응-! 뭉게진 짧은 신음과 함께 효성진이 사정했다. 맞닿아 있던 설양의 배가 성진의 정액으로 더러워졌다. 새까만 옷 위로 티 나게 묻은 하얀 액이 야살스러운 감정을 더욱 불러왔다. 사정하는 와중에도 송곳니를 빼지 않는 효성진의 척추뼈를 따라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던 설양은 절정으로 치닫는 기분에 제 위에 앉혀 두었던 성진을 볏짚 위로 눕혔다.

     

     벌어진 다리를 순순히 허리에 감더니 어깨에 둘러진 팔도 절대 풀지 않으려는 건지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식사 방해받는 게 싫구나? 입꼬리를 올려 웃은 설양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틀어 효성진의 머리에 코를 파묻은 채 제 것을 강하게 처박았다. 가장 깊은 안쪽까지 찔렀다가 빠져나가는 성기가 힘줄까지 느껴질 만큼 너무나도 생생해서 효성진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손이 덜덜 떨려왔다. 그 떨림을 멈추기 위해 옷자락을 찢어버릴 듯한 기세로 쥐어뜯으며 마지막으로 목울대를 움직였다.

     

     효성진의 안에 설양이 사정액을 분출하면서 끝나지 않았으면 했던 관계도 기어이 끝을 맺었다. 일부러 천천히 성기를 빼내니 진득거리는 정액이 길게 늘어져 나왔다. 쉽게 끊어질 리 없는 앞으로의 두 사람과도 같았다. 하얀 정액과 붉은 피로 뒤섞인 볏짚, 그리고 둘의 옷차림은 엉망이었다. 아침에 꼬마 장님이 일어나기 전까지 어떻게든 깨끗하게 해놔야겠네. 효성지인, 너 때문에 귀찮은 일만 늘어났잖아. 먼저 흥분에 못 이겨 성진을 덮친 주제에 설양은 능청스럽게 성진을 탓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효성진은 수행자의 삶 속에서 처음 겪어본 쾌락의 여운에서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지만.

     

       “효성진! 좋았어?”

     

     난 피 빨리면서 박아주기까지 하느라 힘들었는데 넌 좋았어? 놀리는 의도가 다분한 질문에도 효성진은 대꾸할 수 없었다. 온몸의 힘이란 힘은 남김없이 모두 빠져나간 것 같은데, 이상하리만치 기운은 방금 자다 일어난 사람처럼 넘쳐났다. 그걸 눈치챈 설양은 짓궂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피를 마시면 기운이 나는 거야, 아니면 정액을 받으면 기운이 나는 거야? 둘 중 어느 쪽이야? 설마 둘 다야? 안 그래도 달아오른 두 뺨을 더욱 붉게 물들이고 나서야 설양은 효성진을 부끄럽게 만드는 질문 공세를 멈추었다.

     

     뒤처리를 대충 끝낸 설양이 물에 적신 천을 가지고 방으로 돌아오자 효성진은 그새 잠들어 있었다. 옷은 제대로 입고 자야 감기 안 걸린다고 실컷 잔소리한 주제에 뭐야? 어이가 없다는 듯 말하면서도 실실 웃는 설양의 얼굴은 누가 보아도 잔뜩 신이 난 사람의 것이었다. 나한테 저당 잡혀서 어떡해, 도장님? 그 성격에 다른 사람들 피 마시러 다닐 수는 있겠어? 평생 나 붙들고 매달리게 되는 거 아니야? 그거 좋다, 얼른 보고 싶을 정도야. 더러워진 다리 사이를 닦으며 설양은 즐거운 일이라도 하는 사람마냥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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